다음으로 보티첼리로 넘어간다. 역사와 예술도 에너지가 차오르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폭발하는 걸까.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발견, 예술작품들이 1440년대부터 1500년 초반까지 쏟아진 것이 역사 발전의 필연적인 과정이었는지, 우연한 과정들의 나비효과로 일어났는지 각자의 판단이지만, 인류사의 큰 변곡점이 만들어진 것은 맞는 것 같다.
1. Primavera
나는 어렸을 때 유명한 예술가 이름을 닌자거북이형제에게 배웠다. 그 중에 보티첼리가 없었던 것이 이상스럽긴 하다. 보티첼리는 또 피렌체 사람이라고 한다. 1445년 태어나 1510년 죽을 때까지 피렌체에 살았다고 한다.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이기는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는 또 다른 궤적의 그림을 그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이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며, 원근법과 해부학적 정확성 같은 자로 잰듯한 계산을 강조했다면, 보티첼리는 전에 없는 사실적인 우아함과 감정적이고 장식적인 그림을 그린 것 같다. 보티첼리가 레오나르도보다 7살이 많지만, 당대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이니 서로 만나지 않았을리 없다.
'봄'이란 이름을 가진 이 작품은 사실 보티첼리가 이름을 정한 적이 없다고 한다. 후대 이 그림을 해석하면서 이름을 넣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림 자체가 종교, 정치, 철학적으로 많은 의미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파란색의 제피로스(Zephyrus)가 꽃의 요정(Chloris)을 쫓아가 만난다. 봄의 여신 플로라(Flora)가 임신한 상태로 모습을 드래넨다. 가운데에는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비너스가 서 있다. 오른쪽에는 아름다움의 3요소, 우아함, 사랑, 매력을 나타내는 3여신과 헤르메스가 서 있다. 비너스 머리 위로는 눈먼 사랑을 의미하는 큐피드가 하늘을 날고 있다. 이 그림은 또 메디치 가문 내의 결혼을 축하하는 목적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각 학자들마다 의견은 다양한 것 같다. 가이드님은 여신 중의 한명과 헤르메스일 것으로 추정되는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무에는 오렌지가 매달려 있다. 헤르메스와 오렌지는 메디치 가문을 나타내는 표현이었다니... 그 한 그림 내에 결혼의 축하, 메디치가의 정치, 생명력 넘치는 자연, 그리스 신화를 모두 담고 있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2. The Birth of Venus
그리고 여기에 이 그림이 있는지 몰랐다. 그림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렸다.
아까 전에 나왔던 그림에 나왔던 주인공들이 다시 등장한다. 왼쪽에는 제피로스와 클로리스가 바람과 국화를 날리고 있다. 즉 봄바람이고, 국화는 사랑을 나타난다고 한다. 오른쪽에는 시간의 여신이 비너스를 맞이 한다. (다시 찾아보니 봄의 여신 플로라(Flora)라는 의견이 많다.) 시간과 사랑, 영원한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해석이 있다. 그런데 비너스의 모델에 대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따. 그 모델은 쉬모레타 베스푸치(Simonetta Cattaneo de Candia Vespucci) 이다.
그녀는 1453년 생이니 보티첼리보다 8살이 어린 셈이고, 16세에 피렌체의 귀족과 결혼하여 피렌체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미모가 메디치 가문 같은 귀족가문을 넘어 도시를 들썩거리게 한 듯 하다. 성격과 인품 역시 훌륭했다고 하니 누구나 한번으로 만나보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보티첼리와도 잘 어울렸다고 한다. 하지만 불과 23세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보티첼리 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도 그녀의 죽음을 아쉬워했다고 하니 그 미모와 성품이 얼마나 대단했을 지 궁금하다. 보티첼리는 이후 자신의 그림에 쉬모네타를 페르소나로 등장시킨다. 그리고 보티첼리는 쉬모레타와 같은 곳에 묻히길 원했고, 결국 사망 후 쉬모레타의 무덤이 있던 San Salvatore in Ognissanti에 함께 매장된다. 유부녀이기는 했지만 보티첼리는 그녀를 모델 이상의 이상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했을까? 혹은 정말 사랑했을까?
3. Madonna of the Magnificat
이런 둥그런 액자에 그린 그림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걸 tondo라고 한단다. 이렇게 생긴 그림이면 아기 출산을 축하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마리아가 '마니피캇'을 들고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앉히고 있다. 이를 둘러싼 5명은 천사인데, 예수와 마리아와는 좀 다르다는 인상을 주고, 현실적인 얼굴처럼 생겼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 그림은 메디치 가문과 관련된 그림이다. 1478년 메디치가의 장남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와 동생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ano de' Medici)를 죽이려는 파치 음모 사건(Pazzi Conspiracy)이 벌어졌고, 실제로 동생은 사건이 일어나 피렌체 대성당에서 즉사했다. 로렌초는 끝까지 추격해서 파치 가문과 교황청이 배후임을 밝혀내고 살인자들을 처형했다. 이후 메디치가에 조카가 태어났을때 보티첼리는 이그림을 그려 로렌초에게 준다. 그림의 노란색 옷을 입은 천사는 로렌초이고, 검은 옷을 입은 천사는 그의 동생 줄리아노였다. 보티첼리는 가문에 새로운 아이가 태어난 날 죽은 가족을 추모하는 그림을 선물한 것이다.
4. 비방의 알레고리(The Calumny of Apelles)
마지막도 역시 보티첼리의 그림이다. 그런데 앞의 세 그림과 달리 다른 사람이 그린 것처럼 다르다. 그림에 대한 나만의 느낌이지만 이전 그림과 달리 배경이 밋밋하고 비어 있다. 짜여맞춰진 듯 딱딱하다는 느낌도 준다. 사람들의 포즈 역시 딱딱하고, 긴장되어 있으며 핏기 없어 보인다. 오히려 활기 넘쳐 보이는 것은 왕과 그 옆의 사람들이다. 그림이 한 인간이 보여주는 정신의 깊이라고 하면 보티첼리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이 그러진 시기는 1495년 경. 1494년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을 추방하고 공화정을 수립한다. 한 정치체계의 몰락은 그 전체계에 대한 부정을 기본으로 삼고 시작한다. 그것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상관없다. 보티첼리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 하에 작품을 그려온 화가이니 그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 없다. 새로운 수도원장이 대놓고 메디치 가문을 비판하고 나서자 보티첼리는 혼란을 느낀다.
그림에서 왕의 귀는 당나귀처럼 그려져 있다. 무지(Ignorance)와 의심(Suspicion)이 그 귀를 장악하고 있다.
파랗고 흰 드레스를 걸친 여성은 비방(Calumny)이다. 그녀는 무고한 사람을 질질 끌고 가면서 다른 손에 횃불을 들고 있다. 이 비방은 불처럼 어떤 것을 파괴할 지 모른다. 비방(Calumny) 뒤에 거짓말(Lies)과 기만(Deceit)이 있고, 바로 옆에 갈색 옷을 걸친 남자의 이름은 증오(Hatred)이다. 이들은 다 같이 뭉쳐 다니는 것만 같다.
반면 왼쪽에 그려진 옷 벗은 여성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참회(Repentance)와 진실(Truth)이다. 어느 해석에서는 언제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 저들은 무고한 사람을 보지 않고 먼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나는 이들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겁한 진실과 참회이고, 자기 부정이로 보인다. 내가 사는 현실도 그렇다.
보티첼리는 이 기간 이후 점차 작업이 줄어든다. 구세대 정치체계의 예술인을 잊는 것과 비슷한 지도 모르겠다. 그는 1510년 사망하지만, 메디치가문은 1512년 다시 피렌체로 복귀하여 비오 10세까지 배출하는 종교적으로도 막강한 가문이 된다.
5. Vasari Corridor
더 많은 그림을 보고 잠시 숨을 돌리러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서는 아르노 강과 피렌체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우피치 미술관(Uffizi museam)에서 Uffizi 가 사실 영어 office 이다. 그러니 사무실 박물관, 사무실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이유가 메디치가가 사무실로 썼던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을 바라보니 아르노 강 위로 베키오 다리가 보인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지붕 덮힌 회랑이 뻗어져 나가 베키오 다리와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어? 이곳의 이름이 바사리 회랑이라고 한다.
유명하고 부유한 가문의 사람들이 사람들의 관심거리, 암살 대상, 구경거리가 됐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암살 사건이 일어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메디치가는 시뇨리아 광장의 시청사부터 우피치 미술관을 관통해서 베키오 다리의 집과 가게들, 강 건너 자신들의 궁전까지 이르는 길의 집들을 모두 사버리고, 그 위에 회랑을 만든다. 길이만 2km 가 넘으니 출근을 약 30분간 걸어서 하는 것이고, 그 길을 예술품으로 가득 채운다. 그곳에 채워진 예술품들이 내가 관람하고 있었던 것들이다. 21세기 부자들만 보고 있다가 15세기 부자의 플렉스를 보고 있으니 이 또한 부족하지 않은 듯 하다.
(그림의 해석과 설명은 가이드님의 설명과 검색에 나온 것을 덧붙인 겁니다. 이 해석은 결국 하나의 의견이고, 내 감정적인 해석이긴 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신 것과 다르다면 그 의견을 존중합니다. 사실 의견이 다르다면 그것이 미술을 즐기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