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여행기

Italy tour 13 - Uffizi gallery 6: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오해 2025. 1. 13.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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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지난 1개월간 엄청 바빴었네요. 탄핵 이후 여유 시간의 절반은 한국 뉴스를 보면서 분노하는데 쓰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시간에 쫓겨 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크리스마스를 맞아 가족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아직 블로그는 우피치 미술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네요. 오늘 우피치 미술관에서 나올 예정입니다. 


마지막입니다.  원작을 현장에서 그대로 만났을 때의 감동을 우피치 미술관에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훌륭한 설명을 하시는 해설사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사진으로 보는 작품은  그대로의 모습, 작품의 존재를 증명한다면, 현장에서 보는 작품은 존재의 의미를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수백년 전 작가가 그려낸 붓자국과 물감의 질감,  사진과 다른 색감, 그러면서도 바랜 느낌과 물감 갈라짐에서 보이는 세월의 깊이는 가깝고도 먼 작가의 실존과 2020년대를 살아가는 나 자신과 세상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림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다면...

 

감동적인 그림과 조각들을 계속 지나칩니다. 그 중 마주친 그림 하나만 소개합니다.

 

Venus of Urbino by Titian

 

티치아노 베첼리오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Venus of Urbino). 

나신의 아름다운 여성이 나를 쳐다봅니다. 이 그림은 귀족의 신혼방에 넣은 그림이라고 하네요. 이 여성은 유혹하는 표정과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절대 천박해 보이지 않고 되려 우아하고 고상해 보입니다. 난 저 여인의 눈을 계속 쳐다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머리결에서 촉각의 느낌까지 표현되어 있다고 하네요. 그렇게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이걸보면 떠오르는 다른 그림이 있죠. 하지만 마네는 나중에 이 그림의 구도를 따와 진보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이 Olympia 입니다. 

 

2. Self-Portrait by Raffaello Sanzio

 

마음이 바쁘지만, 복도를 지나가면서 만난 화가들의 자화상 중 눈에 띄는 한 그림이 있습니다. 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의 자화상(Self-Portrait)입니다. 호리호리해 체형에 어울리는 검은색 옷, 갸름한 얼굴에 흰 피부, 오른쪽 45도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 큰 눈과 서글서글한 눈매까지 갖춘 멋진 남자 라파엘로입니다. 

 

이제 카파바초를 비롯한 바로크 시대 작품들을 보러 갑니다. 이곳에서도 감동적인 그림들을 많이 봤지만, 카라바초의 그림 두가지만 소개하고 끝내려고 합니다. 

 

3. Medusa by Caravaggio

Medusa by  Caravaggio

 

천재는 원래 괴팍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예외는 아니었던 듯 합니다. 성격도 나쁜데, 술버릇도 나빠. 거기에 아무에게나 넘비는 폭력성까지 가졌던 그는 결국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지만, 그런 막장 인격장애 환자가 그림은 또 그렇게 기똥차게 그렸다니.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극단적으로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을 만들어냈고, 이 영향이 후대에 미칩니다. 사실적인 그림을 추구하면서도  빛과 어둠으로 대상의 감정과 현실을 밝힌다니 알콜중독자에게서 나올 만한 생각입니까? 

 

 우리 나라가 한창 임진왜란을 겪을 1597년에 카라바조는 이걸 만들었습니다. 그림은 방패 모양에 그려졌고, 이 그림이 페르세우스의 방패라는 뜻도 됩니다. 목이 잘린 순간 메두사의 뇌에는 아직 산소화된 피가 있어 의식이 있었을 것이고 출혈이 시작되고 수초 이내 의식을 잃었을 겁니다. 머리 잘린 메두사는 목에서 통증을 느낄 새도 없었을 겁니다. 통증을 느낄 몸이 없을 것이고, 경황도 없었을 테니까요. 어쨌든 목이 잘렸다는 것을 알고 '어?'하고 놀라려는 순간, 방패의 거울에 비친 모습을 그려낸 겁니다. 저 눈동자는 동공에 지진이 온 것 같아요. 

 

4. Bacchus by Caravaggio

 마지막, 술의 신 바쿠스 입니다. 카라바조는 한국에서도 최근 전시회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평소에도 바쿠스를 많이 그렸다고 합니다. 술을 그렇게도 좋아했으니 술의 신도 좋아한 걸까요? 

Bacchus by  Caravaggio

이 그림이 가장 많이 알려져있는 그림일텐데, 소년 바쿠스입니다. 그림이 그려진지 400년이 지났는데, 소년의 발그란 뺨은 방금 술을 마신 것과 같습니다. 눈빛도 약간 게슴츠레한 것이 알딸딸하게 술을 마신 것 같습니다. 왠지 정이 가고 친근감이 가는 아이의 초상화 같습니다. 여기 그려진 옷과 과일, 채소들이 대단한데 카라바조는 이런 사물들의 디테일까지도 챙겼다고 합니다. 술 먹는 습관봐서는 안그럴 것 같은데 말입니다. 또 하나 그의 그림에는 가끔 자신의 초상화를 집어 넣었다고 하는데, 포도주가 담긴 병을 보면 됩니다. 

Bacchus by  Caravaggio, Close-up

 

보입니까? 둥근 병에 반사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이 어슴츠레 나타납니다. 이걸 보다 모두들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Ponte Vecchio

 

여러 그림들을 보았지만, 이정도로 정리하기로 합니다. 미술관이라고 많은 곳을 가본 적은 없지만, 지난 인생을 모두 돌이켜 미술사 혹은 무언가를 배우면서도 마음의 전부를 깊은 감정의 바다에 집어 넣고 허우적거리게 만든 경험은 없었습니다. 보고, 듣고 걸다가 나왔을 뿐이지만, 울고, 웃다가 새침하고 무표정하다, 분노하는 오만가지 감정을 모두 느끼고 나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참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파리와 런던을 가보지 않았지만, 다시 미술관 한 곳을 간다면 우피치에 다시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여기 만큼의 감동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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