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교육의 전제 조건 중 하나는 아빠의 무관심이라고 했는데, 한국에서는 내 생활도 거의 그랬습니다. 학교에 잘 가면 그만이고, 문제가 생기면 큰 거고, 현실에 잘 적응하기만을 바랬지요. 학교를 간다면 거의 입학식과 졸업식 같은 주요 행사 때만 얼굴을 내밀 수 있었습니다. 그 생활이 덴마크에 왔다고 해서 달라질 리는 없습니다.
연수를 준비하면서 덴마크의 학생 교육을 배우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찾아온다는 말을 듣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 교육이 아이들에게 맞을 지는 한국과 다른 상황에서 적응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 판단할 문제였습니다. 당장 덴마크어와 영어의 간격과 수많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아이들과의 사회생활, 한국과 다를 선생님의 지도 방향에 아이들이 적응을 하고 난 이후에나 교육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와 아이들은 그 생활에 내던져졌습니다.
이제 학교 3개월차 아이들은 처음의 혼란스러움과 힘든 의사소통과정을 조금씩 넘어가서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학교에서 선생님 면담이 있었습니다. 1주일 전에 면담 시간을 예약하고, 아이와 함께 학교에 다녀와야 했죠. 저학년인 둘째와 달리 Stage 9(학년)은 아이도 함께 면담에 들어와야 합니다. 아마도 이건 향후 미래에 관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행히 우리 딸은 학교에 아주 잘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는 담임 선생님은 영어 소통이 3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빠르게 적응했고, 학습능력이나 태도가 좋다면서 이대로 간다면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도 생각할 수 있다고 추켜세워주어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세명의 과목 선생님을 만나 각 과목에 대한 딸의 성취도와 가능성, 아이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 충고 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세상에서 아이에게 관심을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한국과 덴마크, 일반과 국제학교 간 차이가 크겠지만, 그것보다 교육제도 자체 차이도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서로 간의 비교를 하는 것이 무의미하지만, 피상적으로나마 이곳 학교에 대해 느낀 점을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1. 선생님에게 권위가 있다
국제 학교이고, 덴마크 이다보니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기저에 깔려 있는 듯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룰을 지킬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엉뚱하게 유색인종 아이가 한국 아이들에게 중국인이라고 집요하게 놀린 적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해결 요청을 하자 담임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한 학생들을 찾아내고 부모에게 통보하며 경고하니 다음날부터 그런 일이 사라지더군요. 또 학교에서는 학기 초반에 통보를 합니다. '집에서 약물, 흡연을 한다면 그건 학교에서 관여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선생님에게 무례하거나,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휴대폰을 제출하지 않는다면 처벌할 것이다.' 아이들도 선생님들의 월급쟁이인 것은 알지만, 선생님께 대들 상상조차 못 하는 걸로 보입니다. 이렇다 보니 '유교문화의 한국'이라는 말도 무색합니다.
2. 활동이 많다
국영수+사탐으로 끝나는 우리 체계와 달리 애들이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합니다. 체육 2시간을 붙혀 마라톤 트랙, 수영장, 볼링장에 다녀옵니다. 정규 수업 시간에 다이빙을 하기도 합니다. 버스를 타고 다녀오는데, 씻는 것 포함하면 실제 운동하는 시간은 30분이 안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생각하지 못했던 운동을 많이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체육도 학교 밖에서 할 정도면 다른 시간도 마찬가지겠죠. 다른 학교와 공동 체육대회를 열어서 버스를 타고 오덴세까지 가기도 합니다(거의 서울-부산 거리). 학생조리 공간이 따로 있어서 요리 수업을 하고요. 수업에서는 노트북을 많이 쓰는데, 잘 몰랐던 게임을 수업에 활용합니다. 어쨌든 한국에서 할 수 없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은 부모가 봐도 부럽습니다.
3. 부모와 선생님이 자주 만난다
이걸 좋다고 해야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불과 4개월 동안 3회 이상은 본 것 같습니다. 처음 학교에 전입 신청을 하러 갔을 때, 학년 초 학교생활설명회, 학교 마라톤대회(!), 학생 면담까지. 거기에 아이가 둘이면 더 자주 가게 되겠죠. 갈 때마다 주요 이벤트 혹은 아이에 대해 귀띔을 해줍니다. 덕분에 부모가 더 부담스러운 느낌도 듭니다.
4. 부모의 참여가 많다
학년별로 부모모임이 facebook, whats app 등에 만들어져서 의견을 공유합니다. 부모 대표가 한해당 약 4만원 정도를 걷어서 행사가 있을 때 피자 등을 쏘고, 함께 자원봉사를 하자고 권유합니다. 하지만 완벽한 의사소통이 힘들어 저는 아직 참여하진 않았습니다. 지난번 언급한 것처럼 덴마크 문화에 다들 적응해서 그런지 조그만 행사라도 부모들이 많이 참석합니다.
마라톤 행사 때에는 여기 사람들이 다 나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죠. 개에게 학교 단체티를 입히고 나와서 뛰는 부모도 보입니다. 운동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상관없이 함께 뛰고 나서 결승선에 들어온 후 가볍게 집으로 가는 가족들을 보니 모든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더군요.
5. 아침마다 도시락을 싼다
당연히 급식을 할 거라 생각했지만 점심은 부모의 몫. 다만 점심 시간이 길지 않고, 아이들은 나가 놀기 때문에 점심은 간단하게 챙겨달라고 아이들은 요구합니다.
5. 부모 마음은 똑같다
설명회나 면담 때 부모들이 한국처럼 과몰입하진 않지만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보입니다. 대학진학을 보장하는 덴마크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학업에 충실이 집중하는지 무엇을 배우는지에 관심을 가진 부모들이 많더군요. 선생님이 걱정 말라는 말에
'We're always more worried than. '
라고 대답하면 다들 웃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여행을 떠난 이후에는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좋아한다죠.
이게 최근 학교 생활을 지켜보며 느낀 몇 가지 단상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큰 탈없이 학교를 잘 나가주는 것 만해도 감사한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