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날을 계속 흐립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게 북유럽의 날씨였는데, 몰랐어요?’라고 묻는 듯한 흐린 날을 계속 보고 있습니다. 간혹 햇빛이 구름 사이에서 잠시 나오기도 하지만 금방 숨어버립니다.
지난 몇 달이 그렇게 과하게 맑았던 것일까요. 그 날만큼 앞으로는 계속 흐린 걸까요? 수년동안 계절과 날씨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살다보니 이제는 바람, 해, 밤, 기온차, 해 뜨고 지는 시간 같은 것들이 확 와닿는 느낌입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변화가 심함을 느낍니다. 매일 해 지는 시간이 2~3분씩 짧아지면, 1달이면 1시간이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에 다녀오기위해 10일간 이곳을 비우고 나서 도착한 지난 주는 더 체감이 심했습니다. 오전 8시 직전에 애들이 학교에 가는데, 밖이 여전히 밤이었지요. 불과 1달 전에도 이렇게 어두운 밤이지는 않았는데요.
그러다 이번주 오전에는 좀 평소와 다른 것이 느껴졌습니다. 일어나 애들일 깨우는데 애들이 잠투정 없이 잘 일어나 아침을 먹었고, 평소보다 날이 좀 밝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구름이 덜 끼여서 햇빛이 나서 그랬나? 아무튼 평소보다 유난히 잘 하루를 시작했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낮에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주는 겁니다. ‘써머타임’이 끝났다고. 30년전에 한국에서 겪었던 써머타임을 여기에서 했다고? 써머타임이 주말 새벽 3시에 중단되었고, 1시간이 늦춰진 겁니다.
그래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유난히 애들 컨디션이 좋았던 이유와 평소보다 날이 밝았던 이유를 알게 된 거죠. 재밌는 경험입니다. 덕분에 한국과의 시차를 다시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의 동지에 해 뜨는 시간은 오전 9시 15분입니다. 해뜨는 시간이 1시간 뒤로 늦춰졌는데, 다시 동지까지는 아직도 1시간 넘게 해 뜨는 시간이 미뤄져야 합니다. 밤이 그렇게 길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왜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집착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10월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더니 본격적으로 상점, 가게들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들어갔습니다. 1년의 1/4을 크리리스마스를 위해 보내는 게 아닐까요? 그 크리스마스 시즌 시작 직전의 ‘전야제’ 같은 행사가 할로윈이죠.
소품 가게들과 마트 들에서 온갖 할로윈 상품을 팝니다. 옷 분장, 해골, 호박, 마녀 분장, 양초 등등과 호박, 박쥐, 해골 모양을 하는 과자와 젤리 등등 다양합니다. 지난 주에는 특이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길을 걸어다닙니다. 노란 반짝이 정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걸어가는 청년이 눈에 띄었고, 랍스터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네요. 간혹 그런 사람들을 보다보니 은근히 할로윈에 대해 기대를 하게 됐습니다.
할로윈 데이에 애들 학교에서 특별한 행사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딸 친구들이 주택을 돌며 사탕 달라고 할 계획이라고 해서 분장을 했다는 소식 정도만 들었지요.
대학교에서 만난 대학원생들에게 물어봤더니 그냥 집에 있겠다고 하더군요. 시내에서 할로윈이라고 행사가 있지는 않다고 하고, 펍 같은 곳에 분장입고 파티 정도는 열릴 거라고 하더군요.
다들 심심한 반응에 의외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10여년 전 필리핀에서 봤던 할로윈 날 꼬마들은 대단히 신나있었거든요. 저녁 모임으로 술을 마셨고, 깰 겸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차분한 분위기였습니다. 맥주골목에서 뛰어다니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요. 덕분에 서구권에서는 할로윈을 챙긴다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그리고 혼자 생각했던 착각을 하나 없애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