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Denmark

북유럽의 겨울을 버티고

오해 2025. 1. 21. 23:01

 

 

 북유럽에서 보내는 일상 중 가장 힘든 것은 '짧아지는 낮'이었다. 지난 20년간 나는 날씨와 '낮 길이'에 대해 신경써본 적이 없었다. 밤낮이 바뀐 삶이었고, 형광등 아래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다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추위와 폭염, 장마와 태풍 외에 신경을 꺼두고 산다. 해가 짧아졌다는 것을 느끼지만, 내 일상과 인과 관계는 별로 없다. 그러니 무덤덤해진다.

 

 시간과 계절을 버리고 살다 순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이 눈에 보이면 당황하게 된다. 하루에 일출, 일몰 시각이 3분씩 짧아지니까 20일이면 2시간이 된다. 8월에는 5시에 일어나도 해가 중천이었는데, 이제  아이들이 등교시간인 8시도  한 밤이다. 그런데도  날은 매일매일 더 어두워졌다. 잠은 충분히 자는데도 잠이 쏟아진다. 밤 10시에 자도 6시에 눈뜨기 힘들었다.  한국에서 나는 어떻게 3~4시간 밖에 자지 않았던 걸까. 

 

 

2024년 12월 19일

 

 이걸 버텨내는 방법은 조명 밖에 없었다. 처음 이곳에 올 당시 전기세를 아낀다며 최소한의 불만 켰다. 그런데 불을 어둡게 하니 기분이 가라앉고, 피곤해지기만 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기 힘들어 하던 아들 옆에 잘 켜지 않던 조명을 켜두니 스스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알았다. 조명이 사람 컨디션을 바꾼다. 그래서  일과 시간에 맞춰 조명을 더 켜기 시작했다. 잠 잘 때가 되면 약간의 조명을, 작업을 하고 있으면 최대한 조명을 켰다. 내가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인 것 같다. 집에 있으면 작업이 앞으로 가지 못했다. 그래서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도서관은 룸펜에겐 익숙한 곳이기도 하다. 앉은 자리에서 작업을 하기에 썩 괜찮은 곳이었다. 도서관은 밖과 상관없이 계속 조명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관 열람실

 

  날씨는 한국보다 춥지 않다. 하지만 1주 중 6~7일은 흐리거나 비 오는 날씨가 지속되었고 비가 오지 않더라도 노면은 젖어 있었다. 날씨에 갇힌 느낌이랄까?  흐린 날이 반복되면서 해가 짧아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해가 이러다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길을 걷고 있어도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고, 없던 우울증도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선입견(?)'을 버리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이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그리 사랑하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 따뜻해 보이는 것은 크리스마스 장식 뿐이다. 굳어 가는 얼굴에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은 소소한 행사와 크리스마스 전통뿐이다. 이 고루한 날씨의 끝에 동지가 있고, 크리스마스가 있다. 그 지점에서 해는 길어지고, 예수가 태어나고, 사람들도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12월 20일 오후 3:40분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고 새해가 밝았다. 벌써 2025년 중 20일이 지나갔다. 해는 여전히 짧지만,하루 해가 길어지는 것을 역시 시시각각 느낀다. 전에는 달력에서만 새로운 출발을 했다.  낮의 길이와 흐린 날이 줄어드는 것을 감각하는 것에서 2025년의 시작을 느끼는 것 역시 나에겐 생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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