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밀라노에 비가 촉촉히 내렸다. 이탈리아에 비내리는 풍경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소나무, 햇살, 바다, 피자 만 생각했었다. 그래도 촉촉하게 내리는 비도 좋았다. 물론 우산이 없어서 버스나 트램을 탈 때까지 비를 맞아야하는 상황이 있었다. 비 속을 걸어가 지하철 역에 도착해 버스표를 사려고 하는데 살 수가 없었다. 주변 가게 들도 문을 열지 않았다. 당황하고 있을때 앱스토어에서 버스표를 끊을 수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덕분에 전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갈 수 있었다.
이날부터 이탈리아 중부에 집중 호우가 내렸던 듯 하다. 뉴스를 잘 보지 않으니 전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오늘 일정은 일단 기차로 피렌체로 이동해서, 기차를 갈아타고 피사로 이동해 그곳을 구경하고, 다시 피렌체에 돌아와 숙박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기차역은 낡아보였지만 기차는 생각보다 훨씬 깨끗하고 쾌적했다. 1등석이라 과자도 나눠줬고, USB충전도 할 수 있었다. 피렌체에서 피사로 가는 기차를 갈아 탔을 때 처음으로 2층 기차를 타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로버트 랭던도 이 기차를 탔던 것 같다. (소설 '인페르노'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실제 영화 '인페르노' 덕에 피렌체와 이스탄불 여행이 더 재미있었다.)
피사에 도착해 피사 기차역 내의 짐 보관소에 가방을 맡겼다. 기차역 앞 거리에 식당들이 많이 있었고, 그곳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느긋하게 피사의 사탑으로 걸어갔다. 약 20분 정도를 걸으면 사탑에 도달할 수 있었다. 중간에 피사 대학 의대가 있어 사진도 몇장 찍었다.
사탑을 도착하기 전부터 인파들의 소리가 점차 들리기 시작했다. 과연 사람들이 많았다. 비뚤어진 사탑도 장관이었지만 크기에도 놀랬다. 생각보다 사탑이 더 컸던 것이다. 그리고, 주변 잔디밭에서 사람들이 사탑을 배경에 두고 온갖 ‘미는’ 모습을 찍어 있는 것도 장관이었다.
성당과 사탑을 지나 안내소에서 표를 끊었는데, 사탑을 직접 들어가기 위해 약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그래서 사탑을 앞에두고 주변에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다녀왔다. 이곳에서 커피는 서서 먹는 것과 자리에 앉아서 먹는 것의 비용이 달랐다. 그리고 사탑에서 조금씩 멀어질수록 커피 값도 싸졌다. 어차피 사탑은 계속 보는 것이고, 우리는 좀 멀리 있는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즐겼다. 시간이 되어 사탑에 안내를 받고 올라갔다. 피사의 사탑도 종탑이었고, 종을 치기위해 사람들이 올라가는 계단역시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올라가고, 내려가며 멀미에 시달렸다. 불과 5도가 안되는 비뚤어짐에도 내 몸은 반응했다. 그리고 종탑에 올라가 주변을 바라보았다. 넓은 평지들이 보였다. 비가 오고 있지만 기분은 즐거웠다. 사탑과 세레당, 성당을 돌아보고 다시 역으로 걸어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걸고, 커피를 마시고, 사탑을 보고 돌아오는 시간은 5시간이면 충분했던 것 같다. 기차를 타고 피렌체에 도착했다. 페렌체 역시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피렌체에 대해 공부해보지 않았지만, 대부분 피렌체 성당이 나온 사진들에서 본 것은 꽃이었다. 햇살과 꽃만 생각나는 도시로 기억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피렌체라는 말이 꽃의 도시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비가 내리는 풍경은 생소했고, 그러면서도 묘한 운치가 있어 좋았다. 비오는 피렌체도 사랑스러웠다. 숙소까지는 15분 걸어가면 된다. 생소하게 돌로 만들어진 바닥을 지나 비를 맞으며 아르노 강을 건너 숙소로 걸어갔다.
저녁을 한식당에 먹고 싶었지만, 예약을 하지 않았기에 숙소 근처의 식당에 먹으러 갔다. 하지만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스테이크 가격이 좋아보여 시켰는데 맛까지 훌륭했던 것이다. 피렌체는 스테이크의 도시이기도 했다. 우리는 결국 다음날에도 스테이크를 먹었다. 비오는 피렌체, 그리고 훌륭한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