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밀라노 시내를 둘러볼 예정이다. 오전에 밀라노 두오모 (Duomo di Milano) 관람 예약을 해뒀고, 오후에는 좀 쉬고 최후의 만찬을 보러 가기로 되어 있다.
아침에 눈을 떴더니 몸이 무겁다. 계속 무리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아침을 먹고 일행들은 먼저 집을 나섰고, 나는 30분여 더 눈을 감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탈리아의 날씨는 북유럽에 비해 그렇게 쌀쌀하지 않다. 10월에 옷은 초가을 옷 정도를 입어야 돌아다닐 만 하다. 조금 더 두꺼운 옷을 입거나 짐을 많이 들면 십중팔구 땀이 나게 되어 있다. 간단한 웃옷과 잠바를 걸치고 걸어 나갔다.
숙소에서 밀라노 대성당은 서쪽으로 약 2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차들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건물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높은 건물이지만 한 건물 안에서도 건축 연도가 다른지 양식이 서로 다르다. 상대적으로 길에 먼지가 많았다. 길가에 보이는 옷 가게에 진열된 옷들의 모양이 패션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범상치 않다. 천의 질, 디자인, 색깔 모두 좋아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인으로 추정되는 키 작은 남자들이 옷을 잘 차려 입은 것이 눈에 보인다. 최근 수개월 동안 북유럽에서 아웃도어 패션만 보다보니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다른 점이 재미있다. 밀라노 성당 광장에 다다르자 엄청난 인파가 보였다. 이스탄불도 사람이 많았지만 여기 사람들은 더 많은 것 같다.
1. 밀라노 성당 지붕 투어
먼저 앱으로 예약해둔 티켓을 보여주고, 보안검색을 통과해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투어는 직접 홈페이지에서 예약 했었다. 천주교 신자이지만 이탈리아의 성당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탈리아는 죽을 때까지 영화를 통해서 볼 거라 생각했던 터라 이곳에 대해 공부할 생각도 별로 없었다. 지붕 투어를 한 것도 사람들이 많이 하니까 신청한 거였다. 지붕에 역사와 사람들이 기억할 '최후의 만찬' 같은 그림, 조각이 있지는 않다. 다만 지붕에 올라가 먼저 놀란 것은 성당을 보존하고 수리하기 위해 지붕에 길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이고, 그 길에서 예술가의 정원을 걷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고딕 첨탑의 모양이 모두 다른 것도 대단해 보였다. 지붕 아래에서 바라볼 때는 거대한 예술 작품의 일부지만, 올라와서 보면 각 첨탑에도 각자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새삼 세대를 넘나드는 인간들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따라 다니면 옥상에서 마리아상을 볼 수 있게 되고, 다시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대성당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2. 밀라노 성당
앞으로도 며칠간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되겠지만, 인간들이 다시 이런 새로운 성당을 지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이스탄불에서도 모스크의 웅대함에 놀랐지만, 이곳에서도 마찬가지 느낌을 받았다. 천장이 멀어 제대로 볼 수 없고, 건물을 떠받는 기둥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두텁다. 높은 곳에 그림이 그려져 있고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빛이 들어온다. 어느 벽으로든 예술 작품이 치장되어 있다. 내가 왜 이곳을 진작 올 생각을 못했을까? 더 젊었을 때 왔어야 다시 오는데? 성당에 잘 나가지 않은 천주교 신자지만 저절로 기도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당 입구 쪽으록 걸어가면 작은 안내소가 보이고 이곳에서 한국어 설명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듣으면서 성당 내부를 돌아다니면 된다. 지하로 내려가는 티켓을 끊었다면 입구에서 내려가면 되는데, 내려가면 성당 건립 이전 세례터와 무덤 유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성당 내부에서 받은 느낌이 강력해서 오히려 심심한 느낌이 든다.
3. 점심
밀라노 성당 건너편에 각종 상점들과 식당이 있다. 재미삼아 말뫼에 이어 밀라노의 KFC에 가보기로 했다.
밀라노 답게 전세계에서 모여든 각 인종들로 가게 안은 가득차 있다. 사람들이 줄 서서 음식 주문을 하는데, 이상하게 키오스크가 있는데도 이용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3개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쓰지 않는다. 아마 눈에 잘 들어오지 않게 벽 쪽에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가족의 평가에 따르면 말뫼의 징거버거가 더 나은 걸로 보인다. 가격은 말뫼와 비슷했지만, 말뫼 것이 더 뜨겁고 신선했고, 케첩도 사야했다.
4. 다시 박물관 그리고 배터리 문제
점심을 먹고 다시 밀라노 두오모로 돌아왔다. 박물관에 가야할 차례였다. 이때부터 나는 아이폰 배터리의 압박을 받게 됐다. 아침에 완충을 시키지 못하고 나왔는데, 보조배터리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해외 유심이라 배터리도 많이 먹는데, 사진을 찍고, 검색을 해야 했다. 10% 이내로 배터리가 떨어지자 결국 주변 상점을 헤집고 다니다가 작은 보조 배터리를 하나 사서 연명해야 했다.
박물관은 밀라노 두오모와 관련된 유물, 건축, 조각 들이 모아진 곳이었다. 볼 수 있는 시간이 2시간이 되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음성가이드를 들으면서 박물관을 둘러봤다. 조각에 대한 생각이나 관점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살아있고 생각을 하는 듯한 사람의 조각을 보고 있으니 잘 모르지만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느낌을 받는다.
4. 최후의 만찬
밀라노 두오모에서 약 20분 다시 서쪽으로 걸어가면 Basilica di Santa Maria delle Grazie 가 나온다. 최후의 만찬 투어는 이곳에서 열린다. 최후의 만찬은 누구나 다 기억하는 그 그림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그 그림이 밀라노 두오모가 아닌 다른 곳에 그려졌다는 것이 신기했다.
최후의 만찬을 본 후 주변 밀라노를 둘러보는 투어로 시작했는데, 최후의 만찬을 보려면 투어를 신청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영어로 설명을 들었지만 한국의 것과는 다른 묘미가 있었다. 정해진 15분 시간에 따라 일정 인원이 방을 이동하면서 관람을 하게 되어 있었다. 벽에 걸린 벽화에 불과할 뿐인데 올려다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나 책, 인터넷 사진에서 봤던 것과 달리 그림 자체에 느껴지는 오오라가 있었다. 예수와 제자들이 살아 움직이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쟁 속에서도 기적처럼 그림은 살아남았고(벽화가 없는 곳), 또 그림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일에 감사했다. 이 그림을 본 것 만으로도 이번 이탈리아 여행은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시내 둘러보기
다음 투어로는 설명을 들으며 시내를 둘러보는 것이었지만, 아이들이 지쳐 있어 중간에 그만 두어야 했다. 밀라노 스타벅스, 두오모를 지나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피사 지나 피렌체로 간다. 패션의 중심지라는 밀라노 여행을 하루 밖에 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밀라노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절대 2일 이내 체류는 계획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루 머물기에 너무나 아쉬운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