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보르는 덴마크에서 인구 4위 도시지만 인구수는 불과 20만에 불과합니다. 한국 기준 20만 도시는 시골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인구 4위 도시는 도시입니다. 규모가 작지만 백화점과 각종 아울렛이 수두룩 합니다. IKEA도 바로 주변에 있고, 무엇보다 REMA 1000, Fotex 같은 마트들이 우글우글 하게 깔려 있지요. 어쨌든 큰 도시는 아닌 듯 하지만 축제도 연달아 있습니다. 지지난주에는 블루스 축제가 있었고, 지난주에는 범선축제가 있었는데 이번주에도 뭔가 있었습니다.
올보르 시내에서는 평일 낮보다 저녁에 사람이 많고, 주중 저녁보다 주말 낮에 시내에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시내에 사람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평소보다 경주용 자전거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어제 아침에 나가보니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변에서 자전거 축제가 열린다고 전해줍니다. 자전거의 나라라 축제를 여는 걸까.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그란폰도, 그것도 월드 챔피언쉽이었죠. 왠지 가슴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란폰도가 열리기는 하지만, 국제적으로 인정 받은 그란폰도에서 상위 25% 진출자들이 모인다는 세계 대회고 올해는 덴마크에서 열리는 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 집 앞 도로를 막고 바리케이트를 치기 시작합니다. 어?
출발선과 결승선이 우리 집 앞이다? 아들은 집 앞에 나갔다가 한국인 선수를 만나서 응원하다가 5크로네를 받았다고 합니다. 갑자기 동포애가 발동한 가족들이 응원 문구를 만들기로 합니다.
오늘 오전 7시 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9시가 되면서 도로가 가득찹니다. 출발이 9시부터 10시 15분까지이니 여성부, 장년부로 나뉘어져 있을 거라 생각하고, 한국인 라이더가 있는지 살펴보지만 잘 보이지 않습니다. 뜻하지 않게 1열 직관을 하게 되니 기분이 묘합니다.
시작된 경기, 10분 마다 나이와 성별로 나뉘어진 그룹이 차례로 출발했습니다. 10살 단위로 나뉠 거라고 생각했지만 라이더가 정말 많기는 많더군요. 남성 40~44세, 45~49세, 그뒤로도 계속 올라가더니 70~89세까지, 여성은 84세까지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응원과 함성은 가장 젊고 기록이 좋을 초기 그룹보다 장년층이 출발할 때 더욱 커졌습니다. 출발하는 모습을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바라보고 내심 반성했습니다. 어제 나사를 조인 것으로 손목이 아프다고 투덜거린 내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12시 45분에 초기 그룹이 도착할 예정이라는데 30분부터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양 각색의 라이더들이 들어옵니다. 누구는 사력을 다해 페달을 밟고 다른 누구는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뻗으며 기뼈하며 들어오고, 그래도 모두 감동입니다. 여성 그룹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이미 여성 1등을 남성들 사이에서 들어왔더군요. 장년 그룹도 들어옵니다. TV 중계를 보면 결승선에서 구경하는 인파들이 많은 것이 궁금했었죠. 무슨 재미로 저기서 보고 있는 걸까. 그런데 직관하다보니 알겠더군요. 별 재미 없어 보이는 광경이지만 한명한명이 들어오는 것 자체에 감동과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거든요.
이날 경기는 덴마크에서 하루 종일 중계를 했다고 합니다. 의도치 않게 시내 중심에 살다보니 스포츠 행사를 집에서 직관하는 감동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네요. 그란폰도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참가할 수 있을까요?